명상과의 첫 만남 이야기

2024-03-28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나와의 우정을 쌓는 일



 명상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할 때 들었던 명상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전에도 혼자서 요가를 해왔기에 명상과 요가는 한 세트(?)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내서 명상을 해보고 싶다거나, 명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스스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히 없었으며 무언가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믿음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명상을 만나게 되었다.


 명상의 첫 느낌은 굉장히 답답했다. ‘지금쯤 분명 끝날 때가 됐는데, 왜 아직도 안 끝나는거지? 혹시 내가 선생님의 가이드를 놓치고 혼자만 눈 감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황급히 눈을 감고, 진지하게 명상에 임하고 있는 척을 이어갔다. 그 때의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면 미간을 엄청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다리가 너무 너무 저리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이러다가 다리가 마비되거나 끊어져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다. 겨우 고비를 넘겨 명상을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감각이 없어 내 다리가 더 이상 내 다리가 아닌 그 느낌. 그리고 몇 초 후에 찾아오는 찌릿찌릿한 느낌.. 다리 안에서 수천개의 별사탕이 터지고 있는 듯한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아마 다들 알 것이다.


 그랬던 나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작지만 확실한 변화가 찾아왔다. 마음을 집중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이다. 물론 30분 이상은 힘들었지만 15분 정도는 거뜬히 앉아있게 되었다. 몸이 어느 정도 편안해지자 호흡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호흡을 바라본다, 내 몸을 관찰한다는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세의 불편함이 사라지자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라고 느껴졌다. 생소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명상을 하고 있으면 스스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들때도 있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게 도대체 뭔지. 





 요가 지도자 과정이 끝나고 우연히 명상 지도자 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침 일정까지 딱 맞았다. 언제 또 인도에 다시 와서 이런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일단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코스에 참여했다. 


 정말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이미 명상에 도가 튼 현자(?)처럼 보이는 친구, 거의 매번 꾸벅꾸벅 졸지만 춤 하나는 기깔나게 웃기게 추는 호주인 존티, 노래를 참 잘하는 일본인 미카, 바비인형 외모를 가진 스웨덴인 니콜까지. 나는 그 곳에서 꾸벅꾸벅 조는 존티과(?)에 속했다.. 과정 초반에는 수업이 끝나고 졸린 눈의 서로를 확인하며 빵 터졌던 기억이 많다. 확실히 명상 지도자 과정은 요가원에서의 명상 수업과는 전혀 달랐다. 일단 명상을 하는 시간만 해도 몇 배는 많았다. 요가 과정에서는 하루에 요가를 다섯시간 정도 한다면 명상 과정에서는 명상만 거의 다섯시간을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건데..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코스에 등록했던걸까.


 하지만 다행이었던 것은 그 다섯 시간이 앉아만 있는 좌선 명상 수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명상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재미까지 있어서 또 놀랐다. 촛불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명상, 다 같이 일어나 춤을 추는 명상, 손바닥을 쳐다보며 뱅글뱅글 도는 명상, 다같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사랑을 나누는 나눔명상,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감정을 해소하는 지버리시(Gibberish) 명상 등 정말 다양한 명상을 경험했다. 솔직히 말해서 과정 내내 앉아서 하는 명상만 하는 거였다면 명상에 더 깊이 빠지지 못했을거라 생각한다.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고 좋아지려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명상을 체험하면서 어쩌면 명상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상을 통해 그동안 나는 내 자신에게 참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동안 알던 나는 나의 정말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태 나 자신을 차분하고 감정의 동요가 크게 없으며 모든게 괜찮다고 생각하는 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명상을 하면 할수록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었다. 어쩔 때는 몰래 울기도 했고, 갑자기 엄청난 화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두려운 마음과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과도 참 많이 만났다. 이런 마음은 처음 마주하는 것이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는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내 안에 진짜 이런 마음들이 다 있었다고 생각하자 그동안 무심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여태 감정의 동요를 겪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명상을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가끔 했다. 내 성격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다는 걱정도 들었다. 원래 나는 쉬운 사람이었는데.. 그렇지만 명상을 계속 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진짜 쉬운 사람(혹은 단순한 사람)이 맞구나. 감정의 동요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감정을 느껴보겠어. 이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얼른 내 마음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지. 방금 전까지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관찰한다고 생각하며 기분이 살짝 풀린 나를 발견했다. 마치 실험실의 쥐 바라보듯 내 감정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감정을 바라보니 스스로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웃긴 장면을 보고 있다가 생각없이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미소가 바로 걷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구나 하는 순간 그 느낌은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물론 매 순간 그렇게 빨리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어떤 날은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슬픔에 사로잡혀 허우적 거리는 날도 있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그런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사실 첫 시작이다. 모든 것에는 그만의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그렇구나 하며 그런 내 자신을 사랑스럽게 봐주고 귀엽게도 봐주고 또 안쓰럽게도 봐준다. 그렇게 명상을 통해 여전히 하루하루 나 자신과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