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채식

2023-06-30


 "요가의 수행에 있어서 채식 식이요법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잔인한 폭군도 채식주의자일 수 있다. 하지만 폭력은 먹거리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칼은 과일을 깎기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적을 찌르기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은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자에게 있다. "

-요가 디피카-



 2019년 2월, 요가 지도자 과정을 위해 인도 리시케시로 떠났다. 히말라야에 맞닿아 있고, 갠지스강의 상류 지역에 위치한 리시케시는 인도인에게는 매우 신성한 동네다. 리시케시에서는 술과 고기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 말은 즉, 앞으로 두 달 동안은 고기를 전혀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나는 딱히 고기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 적어도 한가지 음식만큼은 고기와 함께 조리했다. 고기가 없다면 햄이나 소세지라도, 정 없으면 참치라도 꼭 넣곤 했다. 고기가 없으면 음식의 맛을 살릴 수 없다고 믿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때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고기를 싫어하지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나는 두 달동안 반강제 채식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일주일은 괜찮았다. 매일 메뉴가 바뀌고 음식 맛도 좋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았다. 첫 주가 지나고 2주차에 접어들자 고기를 벌써 일주일이나 먹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건가 싶었던것 같다. 몸에 힘이 없는것 같았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생각했던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부쩍 수척해진 얼굴을 보며 이게 바로 단백질 부족인가..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힘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에 적어도 5시간은 아사나 수련을 했고, 다른 수업 시간에는 처음 접하는 용어들과 생소한 역사, 철학까지 이해하는데 두뇌를 풀 가동해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유보다 나는 채식을 의심했다. 이건 단백질 부족이 틀림없어. 같이 수업 듣는 비채식인(?) 친구들과 이곳을 떠나면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굉장히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몇주가 더 흘렀다. 한 달 동안의 수련이 끝나고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떠났다. 나는 혼자 남아 수련을 이어갔다. 채식에 완전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고기 생각이 나지 않았고 살만했다. 아니 어쩐지 오히려 힘이 더 생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안되던 차투랑가 단다아사나를 곧잘 해내고 머리서기가 가벼워졌으며 얼굴은 한결 맑아진 것처럼 보였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이게 되네? 더 이상 고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를 보았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 꽤 놀랐다. 아.. 고기를 꼭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없어도 잘 살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왜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던 고기를 꼭 먹어야만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내가 믿고 있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믿음들 속에는 과연 진짜 내가 있을까. 계속 생각은 이어졌다. 그 즈음 함께 수련했던 친구가 추천해준 다큐멘터리와 관련 책을 읽고 더 이상 나에게는 육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채식 인생이 시작되었다. 


 채식을 시작하고나니 오히려 먹는 것에 더욱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건강하고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멋지고 비싼 고급 자동차라도 형편없는 연료를 주입한다면 금방 고장나 버릴것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나에게 좋은 연료를 공급하자는 마음으로 식료품을 구매하고 요리한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야채와 조리 방법이 있는지 이전에는 몰랐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는 고기 안 먹고 싶어?’ 라고 종종 묻는데, 진짜 먹고 싶지 않다.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는걸.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이 줄었지만 그 때문에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채식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향긋한 나물들, 고소한 씨앗류, 다양한 콩의 맛을 아직도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는 살찔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결코 지금보다 적게 먹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늘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하지만 요가와 채식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먹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스트레스가 없으니 적당히, 내가 필요한만큼만 먹게 되었다. 진짜 필요에 의한 욕구와 습관이 되어버린 욕망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가끔은 외식도 하고 배달 음식을 먹는 날도 있지만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좋은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식당에 가서 메뉴 고민할 시간이 아주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처음 명상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서 항상 쓰던 단어가 심플 라이프였는데, 채식으로 인해 심플 라이프에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I am what I eat.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이다 .

-히포크라테스-



고대 요가 경전 [요가 수트라]에서 따르면 8단계 요가 중 가장 첫번째로 나오는 것은 야마Yama이다. 이는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관한 내용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첫번째 계율은 비폭력을 뜻하는 아힘사Ahimsa이다. 단순히 살생하지 말라는 부정의 명령보다는 사랑이라는 긍정적이고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살아있는 모든것들을 포용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계율이며, 보통 아힘사를 채식주의로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


지도자 과정 철학 수업에서 이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우주 만물은 에너지를 내뿜는데,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에너지이며, 동물은 죽을 때 두려움이라는 감정 에너지를 내뿜는다고. 그리고 그 에너지는 동물의 세포 속에 저장되어 그 안에 있는 두려움도 고기와 함께 먹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줄곧 음식은 배고픔을 채우는 수단 혹은 어떤 만족감을 주는 하나의 즐거움으로만 여겼었는데,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식재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난 도대체 뭘 먹고 있었던걸까. 여태 생각없이 구입했던 식료품들을 떠올리며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 식료품인 채소도 마찬가지다. 생산과정을 모두 알 수는 없다. 그 이면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채소를 선택한다. 오늘의 내 몸과 마음을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아힘사를 꼭 채식주의로 실천할 필요는 없다. 아힘사에서 비폭력은 타인과 세상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한 비폭력도 포함된다. 채식주의가 나에게 어떤 의미에서 폭력으로 다가온다면 나에게 맞는 아힘사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고, 살아있는 다른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이든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나에게 사랑이 된다.